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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으로 본 극장사론

  • 저자유민영
  • 출판일2017년 9월 15일
  • 페이지수850
  • 판형크라운판 양장
  • ISBN/ISSN978-89-5966-875-5 (93680)
  • 정가 4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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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민영 柳敏榮

1937년 경기 용인 출생. 문학박사. 서울대 및 동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 연극학과를 수학하였다. 한양대 국문학과 및 연극학과 교수, 단국대 예술대학장, 방송위원회 위원, 예술의전당 이사장,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및 석좌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서울예대 석좌교수 및 단국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한국연극산고』, 『한국현대희곡사』, 『한국 극장사』, 『한국연극의 미학』, 『전통극과 현대극』, 『개화기연극사회사』, 『한국연극의 위상』, 『한국근대연극사』, 『한국 근대극장 변천사』, 『이해랑 평전』, 『20세기 후반의 연극문화』, 『격동사회의 문화비평』, 『한국연극운동사』, 『문화공간 개혁과 예술 발전』, 『한국 인물연극사』(전 2권), 『비운의 선구자 윤심덕과 김우진』, 『한국연극의 사적 성찰과 지향』, 『한국근대연극사 신론』(전 2권), 『인생과 연극의 흔적』, 『한국연극의 아버지 동랑 유치진』, 󰡔한국연극의 巨人 이해랑󰡕 외 여러 책이 있다.



『예술경영으로 본 극장사론劇場史論』

 
태학사는 활발한 연구와 저술을 통해 한국 연극와 희곡분야를 학문의 반열 위에 올려 놓은 유민영 교수의 신간 『예술경영으로 본 극장사론』을 2017년 9월 15일 출간했다. 이미 연극, 희곡, 인물 등에 관한 연구와 비평을 통해 연극학에 있어서 중요한 저술을 꾸준하게 내놓고 있는 저자는 우리에게 정말로 절실한 분야인 예술경영의 중요성에 일찍부터 주목해 왔었다.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내놓은 『예술경영으로 본 극장사론』은 한국 극장사의 영역에서 가장 취약한 예술 경영적 시각에서 우리나라 극장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진단하고 있다. 또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2백여 개 이상의 현대적 시설의 거대 극장들의 전근대적인 운영으로 시민의 문화 복지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일단의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합리적 대안 역시 만나볼 수 있다.
 
 
《극장 발전사를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극장사론劇場史論’ ! 》
 
서양 연극학자가 쓴 극장사는 대체로 건축미학과 무대구조, 그리고 공연물의 변화에 포커스를 맞춰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건축물로서의 극장사는 서양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짧을 뿐 아니라 변변한 극장도 없었으며 그나마 기존 극장들에 관한 설계도(設計圖) 하나 남아 있지 않음으로써 서양극장사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1960년대 이전의 극장들은 대부분 이익 창출을 위한 자체 제작은 미미했고, 거의가 대관위주 운영이어서 아무런 자료도 보존하고 있지 않았으며 이후에 세운 극장들 역시 부실한 자료에다가 공개도 꺼리는 편이다. 한 예로서 110년이라는 가장 오랜 극장사를 기록한 단성사마저 자체적으로 역사적 문헌을 남기지 못한 채 폐관되고 말았다. 이러한 한계에 부닥쳤던 저자는 기록된 사료와 관련자들의 인터뷰와 대담, 세종문화회관·국립극장 관련 연구자료, 초대와 2대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들여다본 정동극장의 실제 운영의 모습 등을 통해 최초의 본격적인 극장사론을 이 책에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무대예술 성패의 두 가지 열쇠, 극장 확장과 효율적 경영의 조화》
 
예술의전당과 정동극장 이사장직을 수행하면서 극장의 인적 구조와 운영 실태를 깊숙이 들여다봤던 저자는 무대예술의 성패를 가르는 두 가지 요소에 극장의 확장과 효율적 경영이 있음을 주목한다. 전국에 2백여 개 이상의 극장들이 자리 잡은 것은 한국 공연 예술 측면에서 기쁜 일이지만 여전히 전근대적인 운영은 합리적인 방향제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인적 조직에서부터 재원조성과 활용, 기획과 제작, 예술상품의 홍보 마케팅 등을 아우르는 예술경영에 주목하는 이유다. 저자는 극장 중심이 아닌 영세한 단체 중심의 왜곡된 구조, 시스템과 인적조직의 낙후성과 콘텐츠의 부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지역사회 기여, 과감한 문호 개방 등을 실제적인 사례와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술과 경영, 예술경영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특히 꼼꼼하게 읽어봐야 할 부분이다.
 
《극장 발전사 속에서 만나는 특별한 인물들과 사건들》
 
저자는 열악했던 극장의 발전과정 속에서 흥미로운 인물들과 사건들을 발굴해내어 생생하게 우리들의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최초(1895년)로 인천에서 자기 집 물품창고를 개조하여 협률사(協律舍)라는 근대적 형태의 극장을 세운 인물인 정치국(丁致國)은 젊은 시절 부산에서 엿장수로 시작하여 인천에 와서 금융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였고, 판소리 애호가였던 부친(大院君)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군주로서 딜레탕트가 된 고종황제는 첫 번째 관립극장이라 할 협률사(協律社)를 만들도록 한 주인공이었다. 개화기에 전력을 알 수 없는 박승필(朴承弼)이라는 인물은 혜성같이 등장하여 광무대와 단성사의 지배인으로서 극장과 기업과의 연계, 제작, 홍보, 마케팅 등 현대적 예술경영기법을 도입하여 신문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연희를 끝까지 지켜냈다. 본격적인 전문극장인 동양극장을 처음 지은 배구자(裵龜子)는 구한말의 요화 배정자의 질녀로서 신무용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개인재산을 몽땅 터는 뚝심으로 드라마센터를 지은 유치진, 공간사랑을 지어 ‘사물놀이’를 탄생시키고 전통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공로를 세운 김수근, 문화공간경영의 새 모델을 만든 홍사종 등의 이야기는 공연예술의 세계적인 도약에 대한 기대와 확신을 하게 해줄 것이다.
 
 

■ 책 속으로 ■
 
우선 놀라운 사실은 극장 설립에서 보여준 고종의 근대적인 발상을 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그가 새로운 시대에 직면해서는 전통연희의 존속도 결국 근대적인 옥내극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정치적 격변 속에서 과감하게 협률사를 개설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정부에서 운영하는 극장에서 예술작품, 그것도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판매할 수 있느냐는 조야(朝野)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틴 고종의 의지 속에는 이미 근대적인 사고(思考)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48쪽
 
박승필이 광무대와 단성사 두 극장을 잘 운영해 가는데 있어서는 박정현(朴晶鉉)이라는 실무자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박승필의 신념과 추진력, 그리고 앞서가는 아이디어를 뒷받침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박정현이었다. 단성사가 당시 가장 앞서갈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두 사람의 공로였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두 편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을 직수입한 것도 이들이었고, 미국 영화 <동쪽길>도 모두 단성사가 1922년 말 5주년 기념으로 들여온 새 필름이었다.332) 단성사는 그 외에도 대중의 갈채를 받을 만한 기획공연을 많이 했고, 기업이라든가 사회단체들의 자선공연을 자주 끌어들이기도 했다. 가령 1923년 4월에 극동문화협회와 함께 만주에 사는 우리 동포 자제들을 위한 장학공연을 가졌던 것 또한 기발한 발상이었다. 163쪽.
 
 
동양극장은 처음부터 실패를 안고 출범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 극장 건축자체가 무리였다. 극장을 세운 배구자는 무용가로서는 출중했지만 극장을 알지 못했고 그의 남편은 예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호텔지배인 출신이었다. 그들이 당초 포부만 갖고 극장건축에 나선 것이다. 그나마 자본금 4천 원에 은행대부 19만 5천 원을 안고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본금의 5배의 은행 빚을 떠안고 극장을 세운 셈이다. 극장경영을 전혀 모르는 이들 부부와 낭만주의 소설가 최독견이 그 막대한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었겠는가. 219쪽
 
 
다 알다시피 이병복(李秉福)은 최근까지 자유극장 대표였고, 창단 멤버로서 까페 떼아뜨르는 사적으로 개설한 다방극장이다. 그는 까페 떼아뜨르를 개설하게 된 동기가 지금은 죽고 없는 배우 함현진의 “선생님, 장소가 있어야 연극을 하지요. 50평, 더도 말고 그 정도 공간만 하나 마련해 주세요. 꾸려 나가는 일일랑은 저희에게 맡기시구요.”라는 권유의 말 한마디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의 폭넓은 연극견식과 연극에의 집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그는 특히 전위연극에 관심이 많았고, 따라서 까페 떼아뜨르 같은 찻집 극장을 개설하게 된 것 같다. 616쪽.
 
 
공간사랑에서의 실험 중 가장 돋보이는 것 중에 ‘전통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전형을 보여주면서 오늘날까지도 문화예술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물놀이>였다. 사실 <사물놀이>라고 하면 으레 아주 오래된 옛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1978년에 공간사랑이 마련했던 제1회 ‘공간전통음악의 밤’에서 심우성(沈雨晟)의 제안으로 김덕수(장구), 김용배(꽹과리), 이종대(북), 그리고 최태현(징) 등 신예 국악도가 전래의 농악 중 타악기 네 종류만 갖고 공연을 시도해본 것이 그 단초였고, 사물놀이라는 명칭을 그(심우성)가 지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이 <사물놀이>를 막연히 오래된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통도 ‘창조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665쪽
 
 
<정오의 예술무대>를 개설한 것과 관련하여 정동극장 측은 첫째, 파격적일 정도로 싼 입장료와 가격 책정으로 관객에 대한 문화 향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는 것, 둘째, 무대예술공연 시간대가 저녁이 아니면 주말 오후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혁파하고 점심시간대에도 가능하다는 것 등 세 가지 파격적인 방침을 밝혔다. 이러한 정동극장의 방침은 상식을 깨는 것으로서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동극장이 신예 홍사종 극장장의 운영철학에 입각하여 공연예술사상 처음으로 고객위주의 운영 방침을 내걸은 것으로서 소위 문화사회학적자세로 문화운동을 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실이라 하겠다. 677-678쪽
 

머리말
 
서장: 내외 악조건 속의 더딘 극장의 발달
제1장 초창기의 극장 문화
1. 초라한 왕립극장과 부실한 사설극장
1) 협률사
2) 원각사
2. 일제침략 초기의 극장통제
3. 광무대와 박승필의 자생적 예술경영론
1) 광무대의 등장배경
2) 황금유원 내의 광무대
3) 극장신축과 광무대의 변신
4. 사설극장의 부침과 끈끈한 생명력
1) 장안사
2) 초창기 신파극의 온상, 연흥사
3) 앞서갔던 단성사
제2장 전문극장의 등장과 공연 문화의 변화
1. 조선극장의 경우
2. 구소련의 조선국립극장
3. 동양극장과 전문연극의 정착
1) 동양극장의 설립배경
2) 전속극단과 대중극의 활성화
4. 조선총독부와 부민관
1) 부민관의 개관
2) 부민관과 공연행태의 변화
제3장 광복과 극장문화의 진전
1. 해방 직후의 극장실태
2. 관(국)립극장 운동의 전말
제4장 아시아 최초 국립극장, 그 굴곡진 도정
1. 국립극장 개관 전야
2. 국립극장 개관과 6․25전쟁, 그리고 대구시절
3. 주류연극의 형성기-명동시대의 극장활동
4. 장충동 신축극장의 본도(本道) 찾기
5. 세 번째의 전문가 극장장 시절에 대하여
6. 변혁의 첫 조처, 책임 운영제
7. 법인화로 가는 책임 운영제 2기의 변화
8.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해가는 국립극장
제5장 우리 자본과 기술로 지은 최초의 다목적 극장, 세종문화회관
1. 문화공간으로서의 부민관과 시민회관
2. 부민관과 시공관
3. 시민회관의 등장과 공연문화
4. 침체의 늪에 빠진 세종문화회관
5. 회관의 조그만 변화
6. 변혁 기운의 상승
7. 재단법인화의 대변신
8. 시스템과 인적구조의 혁신
9. 건축물 전체의 리모델링과 외연의 확대
10. 재단법인화와 혁신이 갖는 의미
제6장 진정한 현대극장무대의 등장
1. 드라마센터 건립과 인재산실(人材産室)에로의 진화과정
2. 현대극 창조의 거대 실험장이 된 드라마센터
제7장 연극전문화의 문을 연 소극장운동
1. 6․25 직후 개설된 원각사(圓覺社)
2. 까페 떼아뜨르
3. 3․1로창고극장
4. 실험소극장
5. 세실극장과 군소극장들
6. 공간사랑과 ‘만들어진 전통’ <사물놀이>
제8장 극장 신경영의 한 작은 모델, 정동극장
1. 정동극장의 설립과정 및 초기 활동의 특성
2. 재단법인화에 따른 혁신의 아이콘
3. 정동극장의 치밀하고 색다른 경영철학
 
종장: 극장(文藝會館)의 과잉 확대와 시급한 운영의 묘 찾기
 
참고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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